image
2023-11-10 12:38:20.0
조회수 : 1115

1미터는 어떤 기준으로 만들어 진 걸까? (신체부위?)

길이를 재는 단위는 참 많았다. 


동양에서는 ‘리里’ 라는 단위를 많이 사용했는데,

대략 360걸음에 해당하는 단위라고 한다. (현재기준 약 400m) 

맞다. 아리랑 노래 중에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의 그 리이다.


현대 미국에서 사용하는 ‘마일(mile)’ 이라는 단위는 로마인들의 2000걸음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mil 은 1000을 뜻하는데, 로마인은 두걸음을 한세트로 간주하여 1000세트를 의미했다. 

이처럼 많은 길이의 단위는 직관적인 유래를 지녔다.



리와 마일의 유래

특히 신체의 길이를 기준으로 할 때가 많았는데, 

엄지손가락의 너비 => 인치(inch)

발의 길이 => 풋(foot) / 피트(feet) 복수형 

등이 그것이다. 

BC 6000년경 큐빗(Cubit)이라는 단위로 피라미드의 치수를 측정했는데 

이는 팔꿈치부터 손가락까지의 거리라 한다. 

사람마다 인체의 길이가 약간씩 차이가 있기에 

그 시대의 권력자의 신체를 기준으로 한적도 많았다.

그 예로, 12세기 잉글랜드에선 잉글랜드왕 헨리 1세의 팔길이를 1야드(yard)로 정했다고 한다.



신체 명칭에서 유래된 길이 단위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1미터는 어디서 유래가 되었을까? 

팔길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길고 

사람 키라고 하기에는 약간 짧고




미터(m)의 최초 기원은 18세기말 프랑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혁명 시절)

그 시절 프랑스는 측량술이 고도로 발달되었고 계몽사상이 대두되고 있었다.

25만개나 되는 도량의 단위가 학문적 발달을 저해한다 생각하고 단위를 통일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게 되고 

프랑스 과학아카데미는 지금의 미터법 체계를 설계를 하였는데, 

변하지 않는 물리량으로 선택한 그 기준은 바로 바로 지구의 둘레다.




미터 단위의 기원

북극에서 부터 적도까지의 길이의 1000만분에 1 을 1m로 부르기로 한 것.

정말 측량술에 자신감 있는 학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기준이다. 

따라서 지구 자오선의 둘레가 4000만m로 딱 떨어지는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며(그렇게 하기로 함)

적도의 길이가 4007만m 인건 지구가 완벽한 구의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약간 뚱뚱함)



자오선의 길이와 적도의 길이

덩케르크, 파리, 바르셀로나에 이르는 경도가 동일한 구간의 길이를 측량하여 지금의 기준인 1m 를 가져왔다고 한다. 
(실제로 덩케르크, 파리, 바르셀로나는 경도가 매우 비슷하다) 



경도가 비슷한 바르셀로나와 파리, 그리고 덩케르크

전쟁과 혁명으로 복잡했던 그 시기

목숨을 건 이들의 여정으로 전세계는 통일 된(몇 개 나라? 제외) 단위 체계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미터법의 합리성과 보편성으로 전세계의 상업 및 학문적 교류가 활발하게 일어나게 되었고 

현대 문명은 그들에게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구의 둘레 길이를 가장 먼저 측정한 사람은 누굴까?

지구의 둘레 길이 측정의 역사는 2300년전 알렉산드리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일강 하류에 위치한 거대 상업도시 알렉산드리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알렉산더 대왕의 도시라는 이름의 알렉산드리아는 그리스의 철학과 동양 사상이 융합된 찬란한 지적 활동을 꽃피우던 곳이었다.

참고로 알렉산더 대왕은 발칸반도의 마케도니아에서 인도 인더스강까지의 정복 전쟁을 펼침으로써

아이러니하게도 그리스의 문명과 동양의 문명을 융합한 결과를 낳았고, 

그 문화적 활동들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헬레니즘 문화”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참고로 헬렌은 그리스 자체를 이야기하는 Ἕλλην(Héllēn)에서 나온 말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

그곳에는 위대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이자, 철학자인 에라토스테네스가 있었다. 



에라토스테네스(B.C. 275? ~ B.C. 194?)
수학책에서는 소수를 구하는 방법인 ‘에라토스테네스의 체' 로 많이 알려져 있다. 



출처 : 중학교 1 교학사 교과서



에라토스테네스는 나일강 상류 도시 시에네를 방문했다 신비한 현상을 목격한다. 

하지날 정오에 우물에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것이었다. 



시에네, 지금으 아스완 지방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냥 신기하다 했을 테지만 

이 현상 발견한 에라토스테네스는 위대한 발상으로 지구의 둘레를 측정했다.

심지어 그 발상에 쓰인 수학적 지식은 지금의 중학교 1학년에서 배우는 원과 부채꼴, 평행선과 엇각이 전부다. 

지구가 구라는 가정하에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 횡단면을 이용한 에라토스테네스의 지구 둘레 측정


경도가 동일한 알렉산드리아 지방으로 가서 같은 날(하지) 정오에 생기는 그림자의 각도를 재었고 

태양 빛이 평행하다는 가정하에 알렉산드리아 막대의 각도인 7.2도는 부채꼴의 중심각임을 유도하였다. 

그리고 시에네에서 알렉산드리아까지의 거리를 직접 측정하고(5000 스타디아(그 당시 그리스 길이 단위)) 

지구의 둘레(360도)일 때의 길이를 비례식으로 계산하였다. 

7.2:5000 = 360: 지구둘레


누구나 알 수 있는 간단한 수학적인 원리로 지구의 둘레를 측정한 대단한 발상이었다.

이렇게 지구의 둘레를 측정하게 된 인류는 이 변하지 않는 사실을 기준으로 1m를 만들었다. 

물론 더 정확한 변하지 않는 측정 기준이 필요한 인류는 점차 변하지 않는 기준들로 1m를 대체하기 시작하였지만, 시작은 지구의 반지름이었다.


미터의 정의년도불확도
지구 본초자오선 길이의 {\displaystyle {\frac {1}{40000000}}}1793년0.1~0.5mm
첫 번째 백금 표준 원기 Metre des Archives의 길이1799년0.01~0.05mm
백금-이리듐 표준원기의 길이1889년0.1~0.2 µm
진공에서 크립톤-86 원자의 2p10 과 5d5 준위 사이의
전이에 해당하는 오렌지색 복사 파장의 1650763.73배
1960년0.005~0.01 µm
진공에서 빛이 {\displaystyle {\frac {1}{299792458}}}초 동안 진행한 거리1983년0.1 nm

출처 : 위키피디아




왜 하필 2000만분의 1도, 3000만분의 1도 아닌 1000만분의 1이냐를 물으신다면 1000만으로 나누니까 그나마 친숙한 길이(팔길이) 정도가 되지 않아서 그렇게 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프랑스 과학위원회는 10진법을 좋아해서 2, 3이 없는 보편적인 숫자를 선호하였고 

그러기에 100만분의 1은 너무 길고 (지금의 10m)

1억분의 1은 너무 짧아(지금의 0.1m) 

1000만분의 1이 되지 않았을까?


1m를 기준으로 1,000단위로 커지면 km, Mm, Gm
1,000단위로 작아지면 미리미터(mm), 마이크로미터(㎛), 나노미터(nm) 
등으로 확장되는 이 구조는 다양한 사물을 측정하고 이름 짓는데 유용하였으며

또 1cm x 1cm x 1cm의 정육면체에 담긴 물의 무게를 1g으로 정의하면서 질량의 단위까지 영향을 끼쳤다. 



수학을 공부하다 보면 기준을 너무 유난스럽게 정할 때가 많다. 

교환법칙, 결합법칙, 항등원, 역원, 극한, 도함수의 정의 등등 

당연한 것 같은 사실들을 구구절절 길게 설명해 놓을 때가 많다. 

그러나 이 단단한 논리의 바탕 위에서 수많은 응용 정리와 문명이 꽃피는 걸 생각해 보았을 때

귀찮지만 꼭 선행 되어야 작업이 바로 이 기준을 세우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image
image
#MBR_NM#
#ARTC_CTN#
#REMOVE_BTN#
#MDF_DT_TM#